킬빌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한 편의 강렬한 복수 시. 주인공은 ‘신부’(우마 서먼). 칼을 든 신부가 무자비하게 복수의 여정을 떠나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복수의 길이 일반적인 길이 아니다. 피가 분수처럼 쏟아지고, 무술은 춤처럼 아름답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만화 같은 현실이 펼쳐진다.
첫 장면부터 강렬하다. 신부가 깨어나자마자 벌써 그녀의 결혼식은 피로 물들어 있다. 숨이 막힐 정도로 잔인한 설정이지만, 타란티노는 이걸 마치 아름다운 서사로 만들어낸다. 그리고 신부는 자신의 명단을 꺼내 든다. 복수할 사람들이 하나씩 적혀 있는 그 리스트. 매순간 그 명단에 있는 누군가와 대결을 벌일 때마다, 장면은 바뀌고 리듬은 달라진다. 무협 영화, 스파게티 웨스턴, 일본 애니메이션까지 다채로운 장르가 뒤섞인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 역시 '88인의 광신도'들과의 싸움. 눈 깜짝할 사이에 신부는 수십 명의 적과 싸우고, 각자의 칼끝이 그녀를 향하지만, 그 중 어느 누구도 그녀를 막을 수 없다. 음악과 함께 이 장면은 미친 듯이 빠르게 진행되지만, 그 안의 움직임은 마치 무도회를 보는 듯하다. 피가 흐르지만, 그 피조차도 예술처럼 보이는 기묘한 경험.
킬빌의 또 다른 매력은 이 모든 잔인함 속에 숨겨진 감정이다. 신부의 분노와 슬픔이 그녀의 복수의 길을 더욱 처절하게 만든다. 그녀는 단순한 복수자가 아니다. 가족을 잃고, 자신을 죽음의 문턱까지 밀어붙인 이들에 대한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진 인물이다. 이 감정이 영화의 폭력성을 상쇄시키며, 관객으로 하여금 그녀의 복수를 응원하게 만든다.
타란티노는 킬빌을 통해 복수라는 주제를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냈다. 영화 내내 시각적 스타일은 화려하고 독특하지만, 그 안에 흐르는 감정은 냉혹하다. 그렇기에 킬빌은 단순한 액션 영화가 아니다. 칼을 휘두르며 나아가는 신부의 여정 속에 담긴 상실, 분노, 그리고 정의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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